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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리] 동해는 왜 썰물 기준이고 서해는 섬을 이을까?

by 여정을 기리다 2026. 11. 6.

바다에도 육지처럼 엄연한 국토의 연장선이자 주권이 100% 미치는 국경선인 '영해(Territorial Sea)'가 존재합니다. 국제법과 우리 교과서에 따르면, 영해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인 '기선(Baseline)'으로부터 12해리(약 22km)까지의 범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기선'을 정하는 방식이 동해안과 서해·남해안에서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동해안과 제주도, 울릉도, 독도는 물이 가장 많이 빠졌을 때의 해안선을 기준으로 하는 '통상기선'을 쓰는 반면, 서해안과 남해안은 수많은 섬의 바깥 지점들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직선기선'을 적용합니다. 왜 이 두바다의 국경선 기준이 다른 걸까요? 오늘은 조수간만의 차와 복잡한 해안선이 만든 두 기선의 과학적 원리, 동·서·남해의 지리적 환경 차이, 그리고 이로 인해 결정되는 우리 영토와 해양 주권의 가치까지 알아보겠습니다. 

1. 썰물 때 드러나는 진짜 해안선 : 동해의 통상기선(Normal Baseline)

동해안이나 제주도의 바닷가에 서면, 멀리 수평선까지 거치는 것 없이 시원하게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기준인 '통상기선'을 사용해 영해를 설정합니다. 

 

 [동해안의 통상기선 원리]

 육지 - 밀물선(만조) - 썰물선(간조 : 기준선) → 12해리(영해) → 외해(국제해역)

 

1. 물이 가장 많이 빠졌을 때(조간대 최저선)

  • 통상기선은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져나간 때, 즉 썰물(간조) 시기의 해안선(최저조위선)을 기준선으로 삼습니다. 
  • 밀물 때를 기준으로 삼으면 물에 감기는 땅이 영해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에, 국토를 최대한 넓게 확보하고 안전한 선박 항해를 보장하기 위해 썰물 때 드러나는 마지막 해안선을 기준으로 합니다. 

2. 단순한 해안선과 깊은 수심

  • 동해안, 제주도, 울릉도, 독도는 해안선이 아주 단조롭고 섬이 거의 없으며, 수심이 깊어 밀물과 썰물 때의 해안선 위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 따라서 자연적인 썰물 해안선 자체를 영해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아무런 혼란이 없습니다. 이 선으로부터 바깥쪽으로 12해리(약 22km)를 그어 영해를 확정합니다. 

2. 섬과 섬을 잇는 가상의 장벽 : 서해남해의 직선기선(Straight Baseline)

반면, 서해안과 남해안으로 가면 풍경이 완전히 바뀝니다. 수많은 반도와 곶이 들쭉날쭉 얽혀 있고,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는 리아스식 해안과 다도해(多島海)가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동해처럼 복잡한 썰물 선을 적용했다간 해상의 경계선 역시 갈지(之) 자로 꼬여 도저히 단속을 하거나 배를 운항할 수 없게 됩니다. 

 

 [서·남해안의 직선기선 원리]

 육지 - (복잡한 갯벌과 내해 - [최외곽 섬 A] - (직선기선) - [최외곽 섬 B] → 12해리(영해)

 

1. 가장 바깥쪽 섬들을 자로 잰 듯 잇다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직선기선'입니다. 영토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섬(외곽기점)들을 차례대로 일직선으로 곧게 연결하여 가상의 경계 장벽을 만듭니다. 
  • 이 연결선 자체를 새로운 '기선'으로 삼고, 이 가상의 선으로부터 바깥쪽으로 12해리를 측정해 영해를 설정합니다. 

2. 영해 안쪽의 바다는 '내수(Internal Waters)'

  • 직선기선을 긋게 되면, 실제 육지와 바깥쪽 섬들 사이에 위치한 수많은 갯벌, 만(灣), 그리고 안쪽 바다는 영토의 내부 물길인 '내수(內水)'로 지정됩니다. 내수는 강이나 호수처럼 국가가 100% 영토와 동일한 주권을 행사하는 구역이 되어, 외국 선박의 무해통항권(허가 없이 평화적으로 통과할 권리)조차 차단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해양 영토가 됩니다. 

3. 서·남해의 주요 기점 섬들

  • 인천 백령도, 태안 격렬비열도, 신안 홍도, 여주 거문도, 부산 영도 등 서해와 남해의 가장 바깥을 지키는 23개의 외곽 기점 섬들이 이 거대한 울타리(직선기선)를 지탱하는 든든한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 기선의 차이가 만드는 해양 주권과 국토의 가치 

기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단순한 지도상의 선 긋기가 아니라, 국가의 안보, 어업권, 그리고 천연자원 개발권을 좌우하는 거대한 해양 주권 전쟁의 최전선입니다. 

 

1. 동해의 통상기선이 지키는 영토

  • 동해의 통상기선은 울릉도와 독도라는 외딴섬들의 해양 영토 가치를 수호합니다. 
  • 특히 독도는 주변에 다른 섬이 없는 외로운 섬이기에 자연적인 썰물 해안선을 기준으로 하는 통상기선을 적용받으며, 이로부터 사방 12해리의 영해를 확고히 지켜내고 있습니다. 

2. 서·남해의 직선기선이 선사하는 넓은 바다

  • 서해와 남해의 직선기선은 복잡한 다도해 환경에서 국토의 방어 범위를 비약적으로 넓혀줍니다. 
  • 기선을 육지가 아닌 가장 바깥의 외딴섬들로 전진 배치함으로써, 그 섬들 사이에 위치한 방대한 해역(내수)을 우리 영해 안쪽으로 안전하게 품어 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해안가 어민들의 황금어장을 보호하고 해상 밀수나 간첩선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영해를 철저히 감시·통제하는 강력한 법적 방어막이 되어 줍니다. 

마무리 : 바다의 모양이 결정한 국경선의 지혜 

동해의 통상기선과 서·남해의 직선기선은, 대자연이 빚어낸 한반도 삼면 바다의 뚜렷한 지형적 개성에 국가가 법적 지혜를 더해 완성한 '바다의 국경선'입니다. 파도가 깎아낸 단조롭고 깊은 동해에서는 바다 본연의 썰물선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수천 개 섬과 갯벌이 요동치는 서·남해에서는 가장 바깥의 섬들을 웅장하게 연결해 거대한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서해의 갯벌을 보거나 동해의 수평선을 바라볼 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 자연의 흐름(썰물)과 인간의 약속(직선)이 촘촘히 엮여 만든 해양 영토의 백박이 뛰고 있음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바다의 지형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영토를 온전히 사랑하고 지켜내는 지리적 혜택의 시작입니다.